한경아르떼 (2024): 신비롭고 풍요로운 조진주의 바이올린, 찬란하게 빛났다
협연을 마치고 인사하는 최수열 지휘자와 조진주 바이올리니스트. /임대철 기자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최수열의 지휘로 무대에 오른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서곡 없이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시작했다.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1악장 도입부부터 적극적인 조진주의 비브라토가 돋보였다. 하프의 선율과 잘 어울리는 음색이었다. 조진주는 몸을 크게 쓰며 영화 음악가이기도 한 코른골트 작품에서 할리우드의 낭만성을 무대 앞에 불러왔다.
점착력이 강한 조진주의 음색은 진득하게 악구에 붙어 연결됐다. 알 수 없는 신비감, 풍요로움, 밤의 색채가 무대 위에서 손에 잡힐 듯 어른댔다. 조진주는 디테일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처리했다. 최수열의 손짓과 몸짓에 이끌리는 반주도 기민하게 따라붙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고음이 폐부를 찌르듯 들어왔다. 피날레에서는 누구보다 힘찬 보잉으로 기분 좋은 폭발을 이뤄냈다.
2악장에서 하프와 어우러지는 조진주의 바이올린은 왠지 모를 위안으로 다가왔다. 금빛으로 빛나는 찬란한 순간이었다. 3악장에서 조진주 바이올린은 선이 두꺼웠고, 오케스트라와 당당히 맞서며 끊임없는 자발성으로 곡의 생명력을 불러일으켰다. 준비를 잘 해온 협연자와 함께한 코른골트 협주곡은 이날 연주회에서 단연 돋보였다.
휴식 시간 후 존 윌리엄스의 ‘올림픽 팡파르와 주제’를 연주했다. TV 중계로 본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개막식에서 울려 퍼진 선율이라 잊히지 않는다. 유명한 도입부에서 금관악기끼리의 화성이 조금 성기기는 했지만 따스함이 바람같이 밀려드는 총주가 이어졌다. 곡이 잠잠해지기 전 금관의 실수가 계속 여운으로 남았다. 스네어드럼과 큰북, 현악과 더불어 금관악기들은 1984년의 공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추억을 소환하는 음악은 힘이 세다.
라벨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 중 ‘일출’은 플루트의 재잘거림으로 시작됐다. 목관과 현이 가세한 뒤 어쩐지 동양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피콜로와 플루트가 정취 있게 울리고 현악과 하프가 두텁게 구름 위의 세계를 그렸다. 섬세한 손짓과 몸짓으로 이뤄진 최수열의 지휘는 현악군의 움직임이 잘 보였고 크레셴도가 뚜렷했다. 현악군의 피치카토 위에 띄우는 플루트가 고혹적으로 다가왔다. ‘판토마임’에서는 구름같이 무게가 없는 인상주의 음악의 존재감이 떠올랐고 악장의 바이올린이 고졸한 아취를 머금고 있었다. 엄숙함과 경쾌함이 교차하는 라벨 음악의 묘미를 잘 전달했다.
마지막 ‘일동의 춤’에서부터 오케스트라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야성적이고 원초적인 성격이 어른대는 건 좋았으나 좀 더 침착하게 작은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분리도 높은 연주였으면 어땠을까 한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